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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주식시장(Stock)

테슬라 스포티 파이 서학개미가 가장 사랑하는 종목

by 낙엽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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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테슬라 스포티 파이

 

인류의 첫 달 착륙 위업을 이룬 아폴로 11호에는 3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등. 닐 암스트롱은 선장이었고 버즈 올드린은 달착륙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는 사령선 조종사였습니다. 우리는 이들 중 암스트롱만 잘 알고 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올드린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내딛으면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인간’으로 어느 정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반면 콜린스는 달랐습니다. 우주선을 지켜야 했기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잊힌 우주비행사’, ‘기억하지 않는 세 번째 우주인’라는 수식어도 그래서 얻었습니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


그랬던 그였지만 2019년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다시 국가적 영웅으로 화려하게 재조명을 받습니다.

 

그는 비록 달을 밟지는 못했지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관측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콜린스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착륙할 당시 홀로 궤도비행을 하며 사령선을 지켰습니다. 사령선이 달의 뒷면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지구와의 교신도 끊겼습니다. 그는 그 광활한 우주에서 홀로 달의 뒷면을 바라보며 절대 고독상태에 빠졌습니다.

 

마이클 콜린스 (1930.10 ~ 2021.04)

 

‘세상에서 가장 고독했던 우주사나이’였습니다.


콜린스는 “이곳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나 뿐이다. 이 순간이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다”는 메모를 남겼지만 아폴로 11호 임무일지는 “아담 이래로 누구도 콜린스가 겪었던 고독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세기의 전류 전쟁을 벌였던 지금의 나스닥 테슬라 스포티 파이와 에디슨


지난 4월 28일 콜린스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에는 콜린스 추모 페이지로 가득했고 전 세계 언론들은 그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콜린스처럼 1등에 밀려 잊힌 영웅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 역시 그런 범주였습니다. 

 

그는 백열전구를 발명한 ‘세기의 발명왕’ 에디슨에 철저히 묻혔습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명언은 교과서나 수많은 역사책, 과학책에 실려 있지만 나스닥 테슬라의 업적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습니다. 

 

미국 발명의 날도 에디슨의 생일입니다.


하지만 현재 나스닥의 테슬라 스포티 파이는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더구나 에디슨을 이긴 천재 과학자였습니다.
테슬라는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 에디슨연구소에 입사합니다.

테슬라를 에디슨에 추천한 영국 출신의 미국 기술자이자 발명가인 찰스 뱃철러는 추천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두 명의 위대한 사람을 안다. 한 사람은 당신이고 다른 이는 이 젊은이다.”

테슬라와 에디슨

 

이거 알고 계셨나요?

 

문제는 전기를 보내는 방법을 놓고 두 사람의 의견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에디슨은 직류(DC) 시스템의 안전성을, 테슬라 스포티 파이는 교류(AC)의 경제성을 각각 강조했습니다. 

 

 

당시 직류는 전기를 멀리 보내기 힘들어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가깝게 발전소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반면 교류는 각 지역에서 변압기로 전압을 바꿔주기만 하면 됐습니다. 교류의 장점이 훨씬 많았지만 에디슨은 이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직류를 밀어붙였던 자신의 위상이 뒤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테슬라 스포티 파이에게 전기를 싼 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주겠다고 한 약속마저도 오로지 직류가 아닌 교류방식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테슬라


테슬라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에디슨과 결별합니다. 상사와 직원이었던 관계도 에너미(적)로 바뀝니다. 에디슨과 테슬라 간에 세기적인 ‘전류전쟁’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2019년 8월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커런트 워(The current war·전류전쟁)’도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에디슨을 떠난 테슬라는 한때 미국 굴지의 전기회사로 성장한 웨스팅하우스를 설립한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합세해 에디슨에 대항합니다. 

 

결론은 웨스팅하우스의 지원을 받은 테슬라의 승리.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전역에 공급하는 전기설비를 전부 테슬라의 교류시스템으로 바꿉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에디슨은 교류 전기를 이용해 애완동물들을 의도적으로 잔인하게 살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1만5,000명이 보는 앞에서 코끼리를 죽이면서까지 ‘교류=감전위험’이라는 인식을 심으려 애썼지만 교류방식의 우월성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승자인 테슬라 스포티 파이는 에디슨에 가렸고 패자인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로 남았습니다. 천재성에서는 테슬라가 앞섰지만 사업가 기질과 사교술은 에디슨이 남달랐던 탓입니다.

 

테슬라 스포티 파이


에디슨과 테슬라, 이 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였지만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말년 재운도 없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1915년 이 둘이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했지만 끝내 수상의 영예를 안지는 못했습니다. 에디슨과의 공동수상을 테슬라가 강력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에디슨에 대한 테슬라의 마음속 원한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런 현재 나스닥의 테슬라 스포티 파이가 100년이 훌쩍 넘어 대중에게 다시 등장한 것은 스페이스X를 설립해 화성에 가는 야망을 펼치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2003년 전기차 회사 나스닥 테슬라를 창업하면서입니다.

 

전기차 회사 나스닥의 테슬라는 이후 미국 주식시장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잊힌 천재 테슬라의 명성도 되살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 즉 ‘서학개미’가 가장 사랑하는 종목이 바로 테슬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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