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120만 명 '국민연금 테크'
"노후 대비해 수령액 늘리자"
임의가입 38만·추후납부 11만
퇴사 후 계속 가입도 55만 명
기업체 부장인A 씨는 고교 3학년인 자녀가 수능시험을 마치면 선물로 국민연금에 가입시켜 주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에 일찍 가입하면 은퇴 후 연금 수령액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다른 어떤 선물보다 낫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정주부인 B씨도 노후 대비를 위해 얼마 전10년 치 국민연금 보험료를 한꺼번에 냈다. 수명이 늘어나고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민간 연금 상품보다 보장 수준이 높은 국민연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A 씨와 사례처럼 국민연금을 더 받기 위한 재테크, 이른바 ‘국민연금테크’에 나서는 사람이 크게 늘어 올 6월 말 기준 12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만 60세 이후에도 보험료를 계속 내는‘임의계속 가입자’가 가장 많았다.
가입 기간이 길수록 수급액이 더 많아지는 구조 때문이다. 학생 가정주부 등 직장에 다니지 않아 국민연금에 가입할 의무가 없는데도 보험료를 내는 ‘임의가입자’는38만 4144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만 18~19세 가입자는 3921명에 이른다.
국민연금 납부 예외 기간 보험료를 나중에 내는 추후납부 신청자는 올 상반기11만 3854명에 달했고, 일시금으로 받았던 연금을 반납한 사람은8만 6921명으로 집계됐다. 연금을 받는 시점을 늦춰 수급액을 늘리는 연기연금 신청자도1만 4318명에 달했다.
국민연금 테크에 나서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국민연금의 수익비(낸 보험료 총액의 현재 가치 대비 받는 연금의 현재 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사적 연금의 수익비가 0.9 정도인 데 비해 국민연금은 연령에 따라 최대 2.8배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월 100만 원 넘게 받는 사람…1년 새 27% 늘어 40만 명 육박
국민연금은 과거 애물단지처럼 여겨졌다.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직장인은 당장 월급에서 돈이 나가다 보니 불만이 있었다. 나중에 받는 금액은 크지 않을 것이란 인식도 상당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수년 전 은퇴한 사람의 국민연금 수령액은 수십만 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만으론 노후생활을 꾸리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국민연금으로100만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인식이 바뀌고 있다. 다른 저축을 더 하면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 국민연금에 미리 가입하거나 추후에 가입 기간을 늘려 노년에 수령액을 늘리려는 사람이 증가한 이유다.
월200만 원 넘게 받는 수급자 급증
국민연금 통계를 보면 올 7월 말 기준 월200만 원 이상 국민연금을 받아간 사람은 96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2020년 7월 264명에 비해 3.6배 증가했다.
2019년 98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년 새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작년 말 기준 최고 금액을 받고 있는 사람은 금액이 월226만 9000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월100만 원 이상 받는 사람은 7월 말 기준39만 4821명에 이른다. 1년 전31만 428명에 비해 27.2%, 2018년 말20만 61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평균 수령액은55만 1892원으로 집계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올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54만 8349원보다 많다. 국민연금을 받는 1인 가구라면 평균적으로 국민연금만으로도 최저생계는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늘어나는 것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낸 기간(가입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처음 도입됐다.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가입했더라도 십수 년 전에 은퇴한 사람의 가입기간은 20년 안팎에 불과하다.
수년 전부터 국민연금을 받게 된 사람 중에선 30년가량 보험료를 낸 사람이 적잖다.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에 연동돼 수령액이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100만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20만 명이 ‘국민연금테크’
‘국민연금테크’에 나선 120만 명도 대체로 가입 기간을 늘려 수령액을 더 높이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데 스스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임의가입, 만 60세 이후 가입 자격을 유지하는 임의계속가입, 일시에 수년 치 보험료를 내는 추후납부, 반환일시금으로 받았던 국민연금을 이자와 함께 다시 내는 반납 등이 가입 기간을 늘리는 테크에 해당한다.
이처럼 가입 기간을 늘려 놓으면 큰 이익이 되는 것은 국민연금의 구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은 저부담 고급여로 설계돼 있다.
국민연금 수익비(낸 보험료 총액의 현재가치 대비 받는 연금의 현재가치)는 연령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배를 넘는다. 현재의 제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1980년생도 약 2.1배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연금의 수익비가 1배 안팎에서 결정되는 것에 비해 이득이 크다.
외국인도 이 같은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알고 있다. 국민연금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31만 2308명의 외국인이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국적별로 보면 중국인이 약 17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인도네시아1만 9888명,미국1만 9381명,태국1만 8361명 순이었다. 10년 전20만 4500명에 비해 10만 명 이상 늘었다. 추후납부를 통해 국민연금을 더 받으려는 외국인도 상반기 기준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개혁은 변수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가입자에게 유리하다면 연금 재정은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2057년께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약간 더 빨라질 수도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IT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가입해 노후를 국가에 맡기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면서도 “현재의 연금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연금 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국민연금에 수술이 가해지더라도 민간 연금보다는 더 기대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 전체 국민의 노후생활을 대비한 국가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국민연금에 일찍 가입하고, 장기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조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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